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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야기 속에서 자꾸 답을 찾았을까

쉴 때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다가도,
나는 이상하게 그냥 보고 넘기지 못할 때가 있다.
이야기 속에서 자꾸 사람을 보고,
태도를 보고,
현실에 가져다 붙일 만한 말을 찾으려 한다.

가끔은 그런 내가 좀 웃기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남들은 그냥 재밌게 보고 지나간 장면에서
나는 괜히 교훈 같은 걸 건져 올리려 하고,
인물 하나의 말투나 태도를 두고
현실의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한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은 그저 이야기일 뿐인데,
나는 자꾸 거기서 사람 사는 냄새 같은 걸 찾으려 든다.

생각해 보면 이런 습관은 어릴 때부터 비슷했던 것 같다.

한 번은 애니메이션 홍길동전을 보고,
그게 고전문학 홍길동전과 같은 건 줄 알고
친구들 앞에서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꽤 웃기다.
이름이 같으니 같은 것이라고 여겼고,
나는 그걸 제법 진지하게 믿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반응은 이상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듯한 분위기였고,
단단히 착각하고 있던 나는
그 분위기가 왜 그런지를 그때는 읽지 못했다.
나중에야 아, 내가 완전히 다른 걸 같은 것으로 믿고 있었구나 하고
뒤늦게 깨달았다.
그 기억은 지금 떠올려도 좀 웃기고 민망하다.

그런데 돌아보면 그 일은
그저 뭘 몰라서 생긴 해프닝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나는 원래부터 이야기를 그냥 이야기로만 두는 데
조금 서툰 쪽이었던 것 같다.
애니메이션이든 책이든,
내게는 둘 다 그냥 흘려보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현실과 이어질 수 있는 재료에 가까웠다.

그러니 지금도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괜히 교훈을 찾고 있는 내가 완전히 새삼스럽지는 않다.
나는 원래부터 이야기를 보고 끝내는 쪽보다는,
그걸 내 쪽으로 끌고 와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쪽에 가까웠다.
저건 어떤 사람 이야기일까,
저 태도는 현실에서는 어떻게 보일까,
저 장면이 내 삶이랑 닿는 부분은 없을까.
이런 식으로 자꾸 현실 쪽으로 번역해 보려 한다.

물론 그런 버릇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이야기를 너무 빨리 의미로 바꿔 버리면,
그냥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도 자꾸 해석하게 된다.
굳이 거기서 뭘 배워야 하나 싶은 순간에도
괜히 뭔가를 건져 올리려는 마음이 먼저 움직일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스스로 좀 우스워 보일 때도 있다.
나는 왜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도
이상하게 자꾸 삶의 힌트 같은 걸 찾으려 할까 싶어서.

그런데 또 완전히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사람이 꼭 고전문학이나 어려운 책에서만
삶의 감각을 배우는 것은 아닐 테니까.
오히려 만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건
이야기의 구조가 더 선명하고,
인물의 감정이나 태도도 더 직접적으로 다가와서
어떤 순간에는 현실보다 먼저 마음에 박히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나가는 장면이
누군가에게는 오래 남는 문장이나 태도가 되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나는 늘 그런 쪽이었다.
이야기를 보고 끝내는 쪽보다는,
이야기를 현실로 끌고 와서 다시 보는 쪽.
그 안에서 사람을 읽고,
관계를 읽고,
내 쪽의 마음까지 같이 들여다보는 쪽.

어릴 때 애니메이션 홍길동전을
고전문학 홍길동전과 같은 것으로 믿고 발표했던 기억은 지금 떠올리면 분명 민망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때도 이미 나는 이야기를 그냥 허구로만 두지 못했던 것 같다.
이름 하나만 같아도 같은 세계라고 믿고 싶었고,
이야기와 현실을 자꾸 한 덩어리로 묶어서 이해하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다가도
나는 자꾸 거기서 사람을 읽고,
현실을 읽고,
가끔은 나 자신까지 읽으려 한다.
조금 웃기고, 조금 과한 버릇일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쩌면 그게
내가 이야기를 좋아하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이야기 속에서 답을 찾으려 했고,
가끔은 그걸 너무 곧이곧대로 믿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