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뻔한 답을 믿지 않을까
쉴 때 애니메이션을 틀어놓곤 한다.
오랜만에 원펀맨 시즌1을 틀어놓고 있었다.
벌써 7년 전 작품이라는 게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도, 그 작품이 건드리는 지점은 여전히 낡지 않은 것 같았다.
예전에도 나는 그 작품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대충 알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최강을 원한다.
압도적인 결과를 원하고, 누 구도 부정할 수 없는 수준의 힘을 원한다.
그런데 정작 그 힘에 도달하는 과정이 너무 단순하게 제시되면,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다.
만화에서도 나오듯이 훈련법은 단순하다.
팔굽혀펴기 100번, 윗몸일으키기 100번, 스쿼트 100번, 달리기 10km.
거기에 하루 3식.
사실 저 수치만 놓고 보면 절대 초인적인 강도는 아니다.
하나하나만 떼어 보면 오히려 “이 정도?” 싶을 만큼 단순하다.
그리고 현실에는 저 이상을 매일 해내는 사람들도 분명 많다.
그래서 더 묘하다.
원펀맨이 건드리는 대상은 엄청난 수치를 못 버티는 사람이라기보다,
그런 반복을 해보기도 전에 분명 다른 비밀이 있을 거라고 여기는 태도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문제는 수치보다 빈도와 기간이다.
저걸 매일, 그것도 3년 동안 한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다른 어려움들이 느껴진다.
몸의 피로만이 아니라 지루함, 귀찮음, 의심, 의미 없음 같은 것들이 먼저 밀려온다.
하기 싫은 날도 있을 것이고, 몸이 무거운 날도 있을 것이고,
오늘 하루쯤은 넘어가도 되지 않나 싶은 날도 수없이 생길 것이다.
그런데도 계속한다는 것.
어쩌면 사람들이 가장 견디기 어려워하는 건 바로 그 부분인지도 모른다.
현실에서는 반복 그 자체만 버티면 되는 것도 아니다.
주변의 말, 반응, 비교, 견제까지 함께 견뎌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꾸준함은 체력의 문제이기만 한 게 아니라, 흔들리는 마음을 다시 붙잡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원펀맨 시즌1이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건 훈련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안에는 남의 선행을 쉽게 깎아내리고,
군중심리를 이용해 자기 위치를 지키고,
익명성과 분위기 뒤에 숨어 타인을 흔드는 인간들도 함께 나온다.
그래서 반복의 어려움은 단순히 지루함이나 피로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 속에서 마음을 잃지 않는 문제로도 보이게 된다.
사람들은 대체로 더 특별한 답을 원하는 것 같다.
남들은 모르는 비법, 숨겨진 재능, 결정적인 한 방, 판을 뒤집는 계기 같은 것들.
그래야 결과가 특별한 만큼 과정도 특별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화 안에서도 스테로이드니, 슈트니, 진화를 위한 프로젝트니,
뭔가 다른 이유가 따로 있을 거라는 이야기들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단순한 반복만으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하면, 사람은 오히려 더 불편해진다.
원펀맨은 그 자리에서 너무 무심한 얼굴로
그냥 했다고.
매일 했다고.
오래 했다고.
같은 말들을 들이민다.
이 말은 단순해서 오히려 믿기 어렵다.
너무 평범해서, 진짜 이유가 따로 있을 것 같아진다.
사람들은 쉽게 “그것만으로 될 리가 없잖아”라고 말한다.
그 말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닐 수도 있다.
현실은 만화처럼 흘러가지 않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그런 말을 하고 싶어지는 이유는 꼭 논리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뻔한 답이 싫은 게 아니라,
뻔한 답이 너무 오래 걸린다는 사실이 싫은 걸지도 모른다.
단순한 답은 대개 지루하다.
바로 드라마가 생기지 않고, 자랑할 만한 장면도 많지 않다.
오늘 했다고 해서 내 일 사람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그저 반복하고, 버티고, 또 반복해야 한다.
대단한 깨달음보다 먼저 필요한 건, 재미없고 단조로운 시간을 견디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만화 속 다른 대사들과도 묘하게 이어진다.
일할 의욕 없는 젊은이 이야기나,
“꿈은 이룰 수 있어”, “꿈을 포기하지 마” 같은 무책임한 말에
감화되지 말라는 식의 장면들도 비슷한 결로 남는다.
그 말들이 완전히 틀렸다고 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너무 쉽게, 너무 예쁘게 말해진다는 데 있다.
듣는 사람의 처지나 재능, 환경, 지속 가능성, 실패의 누적 같은 것들은 빠진 채
좋은 말처럼만 유통되기 쉽다.
그러니 오히려 사이타마의 말이 더 현실적으로 들린다.
희망찬 구호보다, 별로 멋있지도 않은 반복의 이야기가 더 현실적으로 들린다.
사이타마의 말이 건드리는 지점이 있는 건 맞다.
다만 그 말은 만화 안에 있을 때와 현실에서 사람 입을 통해 나올 때가 조금 다르다.
만화에서는 무심한 강자의 태도로 보일 수 있어도,
현실에서 그런 말투와 표정은 쉽게 무례함이 된다.
맞는 말이더라도, 사람 앞에서는 전혀 다르게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에는 이미 자기 루틴을 가지고
매일 운동하고, 매일 공부하고, 매일 일하고, 매일 버티는 사람들이 많다.
만화식으로 말하면 그런 ‘히어로’들이 꽤 많은 셈이다.
그래서 더더욱 원펀맨이 찌르는 건 결과 그 자체보다,
그런 반복의 세계에 들어가 보기도 전에 다른 설명부터 찾는 마음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크 게 다르지 않다.
무언가를 오래 붙들고 가야 할 때마다,
정말 필요한 게 새로운 비밀인지 아니면 그냥 계속하는 힘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답이 너무 뻔해서 자꾸 고개를 돌리고 싶어질 때도 있다.
뻔한 답은 이상하게 자존심을 건드린다.
이 정도 결과를 원하면서 결국 해야 하는 일이 이렇게 평범한 반복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 복잡한 이유를 찾고,
조금 더 그럴듯한 설명을 붙이고 싶어진다.
물론 환경과 조건은 정말 중요하다.
사람마다 출발점도 다르고, 감당해야 하는 무게도 다르다.
그러니 모든 것을 의지 하나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남는 것이 있다면,
결국 어느 지점에서는 반복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게 있다.
저런 생각은 자기 안에서 곱씹을 때와,
그것을 입 밖으로 내서 남에게 말할 때가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뻔한 답이 어느 정도 맞는 말이라고 해도,
그걸 그대로 다른 사람에게 툭 던지는 순간 그 말은 쉽게 불쾌해진다.
듣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답을 몰라서 못하는 게 아니라, 그냥 안 해서 그런 거 아니냐고.
별거 아닌 걸 왜 못 하냐고.
결국 꾸준히 안 해서 지금 이 모양인 것 아니냐고.
이쯤 되면 그 말은 더 이상 답이 아니다.
상대의 사정과 버티는 방식과 환경은 다 지워버린 채,
결과만 놓고 판정하는 말에 가까워진다.
맞는 말일 수는 있어도, 좋은 말은 아니게 된다.
그래서 이런 종류의 생각은 남을 가르치는 말로 쓰는 순간 금방 거칠어진다.
반대로 자기 쪽으로 접어 오면 조금 다르게 남는다.
나는 왜 뻔한 답을 알면서도 자꾸 믿지 못할까.
나는 왜 단순한 반복보다 다른 설명을 더 찾고 싶어질까.
나는 왜 꾸준함의 필요를 알면서도,
그것이 내 삶을 오래 시험한다는 사실 앞에서 자꾸 다른 길을 상상할까.
이 질문은 남을 몰아붙이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얼마나 자주 쉬운 답보다 그럴듯한 답을 더 원해 왔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원펀맨은 그걸 우스꽝스럽게 보여준다.
너무 강해져서 오히려 허무해진 사람의 얼굴로,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던 최강의 끝이 꼭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까지 함께 보여준다.
그런데도 가장 먼저 오래 남는 건 결국 그 단순한 훈련법 같은 것이다.
우스워 보이고, 과장처럼 보이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은데,
그 안에는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종류의 진실이 조금 섞여 있다.
대단한 결과를 원하면서
정작 그 결과를 만드는 평범한 반복은 얕보는 마음.
어쩌면 내가 믿기 싫어하는 건 뻔한 답이 아니라,
그 답이 결국 나를 오래 시험한다는 사실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아마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내게 필요한 통찰이 누군가에게는 무례한 판정처럼 들릴 수 있으니까.
스스로에게는 어느 정도 유효한 말이,
남에게는 불필요한 참견이 될 수 있으니까.
뻔한 답은 때로 맞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남에게 쉽게 말하는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