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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안다는 말이 싫어질 때

가끔 누군가는 사람을 잘 안다고 말한다.

저 사람은 왜 저러는지 안다고 하고,
무슨 사정이 있는지 안다고 하고,
겉으로는 이렇지만 속은 저럴 거라고도 한다.

예전에는 그런 말을
그저 관심이 깊은 정도로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꼭 관심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불쾌했던 것은
관심이나 이해 자체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까웠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그 사람의 취약점이나 결핍을 먼저 읽고,
그걸 자기가 알고 있다는 자리로 들어가는 태도.
나는 그게 싫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저 사람은 자존감이 낮아서 저런다.
저 사람은 어디서 밀려서 예민하다.
저 사람은 어릴 때부터 인정받지 못해서 그렇다.

이런 말들은
겉으로는 설명처럼 들리지만,
듣고 있으면 이상하게 사람을 좁힌다.

그 사람을 이해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을 하나의 약점이나 결핍으로 정리해버리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대개 자기가 한 발 위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네 약한 부분을 알고 있다.
나는 네 진짜 이유를 알고 있다.
나는 네가 모르는 너를 알고 있다.

말로 저렇게까지 드러내지 않더라도,
가끔은 그 기운만으로도 충분히 불쾌하다.

사람을 안다는 말이
이해보다 우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내가 느끼는 불쾌함은
단순히 기분이 나쁘다는 쪽만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는 대신
취약한 지점을 먼저 찾고,
그걸 근거로 상대를 설명하고,
나아가 그 사람을 다룰 수 있다고 믿는 태도.
그 안에는 묘한 잔인함 같은 것이 있다.

그게 꼭 큰 악의라서라기보다,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서 더 싫다.

관심이 많은 사람처럼 말하고,
이해심이 있는 사람처럼 설명하지만,
실제로는 상대를 자기 해석 안에 가둬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 관심은 정말 상대를 향한 것일까.
아니면 상대를 통해 자기를 확인하려는 호기심에 더 가까운 걸까.
관심을 넘어, 자신을 위한 호기심이 되고 있음을 인지하고는 있는 걸까.

처음에는 이런 태도를
나이 든 사람들에게서 더 자주 본다고 생각했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을 쉽게 파악하려 들고,
몇 마디 안에서 위치를 정하려 하고,
상대의 취약점을 먼저 읽고,
그걸 알고 있다는 태도로 들어오는 경우들이
실제로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다 보니
꼭 나이의 문제로만 볼 수도 없는 것 같았다.

어린 사람 중에도 그런 결은 있었고,
반대로 나이가 있어도
그런 식으로 사람을 다루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니까 문제는 나이 자체라기보다
사람을 대하는 어떤 감각에 더 가까운 것 같았다.

이해하려는 감각이라기보다
분류하고,
파악하고,
위치를 잡고,
자기 쪽의 우위를 확인하려는 감각.

그게 정확히 무슨 문제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불안인지,
우위의식인지,
자기확인 욕구인지,
아니면 관계를 이해보다 서열로 다루는 습관 같은 것인지.

하나로 딱 부르기는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는 이제 그런 태도를 예전처럼 쉽게 좋게 봐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완전히 다르기만 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를 빨리 이해했다고 착각하거나,
몇 마디 듣고 그 사람의 이유를 짐작하거나,
내가 뭔가를 안다고 믿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불쾌함은
남에 대한 감정이면서 동시에
내가 지나온 태도에 대한 불편함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무언가를 안다는 말 앞에서
조금 더 조심하고 싶다.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설명되지 않고,
설명된다고 해도
그걸 먼저 꺼내는 태도가 늘 이해는 아닐 수 있으니까.

이제는 그런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이해하고 싶지도 않아졌다.

예전에는 저 말들 뒤에 있는 결핍이나 불안을 읽어보려 했던 것 같다.
왜 저럴까,
뭐가 부족해서 저럴까,
어떤 식으로 저 태도가 굳어졌을까,
그런 식으로 한 번 더 들어가 보려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그 노력 자체가 꼭 필요하지 않다는 쪽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다.

모든 사람을 이해하려고 드는 것이
꼭 좋은 태도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그냥 저기 있는 것으로 두는 편이,
적어도 나를 덜 피곤하게 만든다.

예전 같으면 끝까지 붙잡고 있었을 장면들도,
요즘은 그냥 두는 쪽이 낫다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다.

이게 대단한 깨달음 같은 건 아니다.

그저 사람을 볼 때마다
끝까지 해석하고,
끝까지 이해하고,
끝까지 이유를 붙이려 드는 것이
늘 좋은 일만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는 정도에 가깝다.

나는 누군가를 빨리 읽는 사람보다,
모른다는 자리에 조금 더 오래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더 낫다고 느낄 때가 많아졌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태도 앞에서는
굳이 다 이해하려 들지 않고,
그냥 두는 쪽도 필요하다는 걸
조금씩 배우고 있다.

사람을 안다는 말이
사람을 이해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을 줄이는 말처럼 들릴 때가 있다.

아마 내가 싫었던 건
바로 그 순간의 태도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