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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한 게 아니라, 예의를 의무처럼 배운 거였다

나는 왜 무례한 사람을 보면 울컥할까.

한동안은 그걸
단순히 예의 없음에 대한 거부감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조금 무심하거나
제멋대로인 모습이 보이면,
나도 모르게 먼저 마음이 거슬렸다.

그저 겉으로는
무심하고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게 단순한 감정만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무례하거나 제멋대로라고 느껴졌던 장면들도,
한 박자 늦춰 보면
꼭 그렇게만 볼 수는 없었다.

그 사람도 그 사람 나름의 상황과 이유 속에 있었을 수 있고,
내가 본 것은 아주 짧은 한순간뿐이었을지도 모른다.

머리로는 그렇게 이해할 수 있었는데도,
이상하게 마음은 이해보다 먼저 반응하곤 했다.

생각해 보니
그 감정의 안쪽에는 다른 문장이 숨어 있었다.

나는 저럴 자유가 없었는데.

아마 이 말이 더 가까웠다.

나는 어릴 때
공공장소에서 몸을 크게 쓰거나,
편한 자세로 있는 쪽과는 거리가 멀었다.

늘 눈치를 봐야 했고,
늘 태도를 갖춰야 했다.

크게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보기 안 좋으면 혼날 수 있다는 감각이 먼저 있었다.

예의는 중요해서 지키는 것이라기보다,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것에 가까웠다.

그래서 누군가 힘을 빼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행동 자체보다 먼저
내 안의 오래된 긴장이 반응했던 것 같다.

저렇게 있어도 되는 사람을 볼 때면,
나는 왜 한 번도 저렇게 있지 못했는지가
같이 올라오는 식이었다.

돌이켜 보면 이런 감각은
서비스 일을 할 때도 비슷했다.

편의점이나 카페 알바를 하면서
나는 늘 친절하게 인사하려고 했고,
최대한 성의 있게 응대하려고 했다.

그때의 나는
그냥 성실한 사람이고 싶었던 걸까.

지금 와서 보면
꼭 그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친절과 성실은
내 선택이라기보다 거의 기본 자세에 가까웠다.

그렇게 하는 편이 더 안전했고,
그래야 마음이 덜 불편했다.

그래서 누군가 불친절하거나
무심하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
단순히 프로답지 못하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어딘가 울컥했던 것 같다.

나는 저렇게 못 했는데.
나는 늘 먼저 인사해야 했는데.
나는 늘 더 긴장하고 더 조심해야 했는데.

그 감정은
남을 판단하는 마음만이 아니라,
늘 그렇게 해야 했던 사람의 서운함에 더 가까웠다.

이렇게 보면
내가 무례함을 싫어했던 이유도
조금 다르게 보인다.

나는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예의를 의무처럼 배운 사람이기도 했다.

성실함을 가치로 여긴 면도 있었겠지만,
한동안은 성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러니 누군가 규칙 밖에서 편하게 있는 모습을 볼 때
올라오던 감정은,
도덕적 분노라기보다
뒤늦은 서운함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나는 성실해서 남을 판단한 게 아니라,
늘 성실해야 했던 쪽이라 서운했던 걸지도 모른다.

이 문장을 떠올리고 나니
예전의 내 반응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내가 유난히 빡빡한 사람이라서 그랬던 것만은 아니었다.
누군가를 심판하고 싶어서만도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몸에 밴 긴장과 규칙이
낯선 장면 앞에서 먼저 깨어났던 것에 가까웠다.

이걸 안다고 해서
당장 모든 울컥함이 사라지는 건 아닐 것이다.

여전히 어떤 장면은 먼저 거슬리고,
마음이 먼저 반응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그 감정을 조금 더 정확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저 사람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내가 한 번도 저럴 수 없었던 쪽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면
남을 무조건 나쁘게 몰지 않으면서도,
내 감정을 대충 넘기지 않을 수 있다.

지금 올라온 불편함이
현재의 장면만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닐 수 있다는 것.
그 안에는 예전의 나도 조금 섞여 있다는 것.

가끔은 그런 식으로,
타인을 보고 올라온 감정이
사실은 내 안의 오래된 이야기를 데리고 나오기도 한다.

나는 예의를 의무처럼 배운 사람인 줄만 알았는데,
그 밑바닥에는
저렇지 않으면 망한다는 감각이 있었다.

그걸 알아차리고 나니,
이제는 모든 장면에서
그렇게까지 긴장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조금씩,
그 오래된 규칙으로부터
자유로워져도 괜찮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