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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에서 HD로 올라가는 중입니다

요즘 나는 "오케스트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다시 거슬렸다.
기술 이야기인데 왜 자꾸 예술을 끌어오는 걸까 싶었다.
지휘자니, 마에스트로니 하는 표현도 톤이 과하게 느껴졌다.

사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더 거슬렸다.
그때는 생각도 길게 하지 않았다.
그냥 "허세네" 하고 넘어갔다.

지금 돌아보니, 그 시절의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선을 긋는 사람이었다.

이건 허세.
저건 실체.
이건 필요.
저건 과장.

판단은 빨랐고,
결론도 명확했다.
무엇보다 에너지가 적게 들었다.

그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때의 나에게는 그게 가장 효율적인 해상도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그 단정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허세처럼 보이던 것 안에도
어쩌면 필요한 역할이 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구조는 분명 필요하지만
그 위에 붙은 언어는 과장일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걱정이 통제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그 안에는 불안이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이건 갑자기 찾아온 깨달음은 아니었다.
조용히, 서서히 바뀌었다.

경계는 사라지지 않았지만
예전만큼 또렷하지도 않았다.

해상도가 올라가면
세상이 더 선명해질 줄 알았다.

그런데 오히려
검은색과 흰색 사이의
중간 톤이 더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요즘 나는 조금 더 복잡해졌다.

판단은 느려졌고,
생각은 많아졌다.
가끔은 괜히 깊어져서 손해 보는 기분도 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분노는 줄었다.

예전 같으면 "허세네" 하고 닫아버렸을 장면을
지금은 잠깐 바라본다.
맞다, 틀리다를 정하기 전에
그 안의 구조를 한 번 더 본다.

나는 지금 더 명확해진 건지,
그냥 더 복잡해진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예전의 단순함으로 완전히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것.

SD 화면은 편했고,
빠르게 잘라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거칠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늘 HD로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높은 해상도는 생각보다 에너지를 많이 쓴다.

그래서 오늘은
분석을 멈추고,
해석을 미루고,
잠깐 쉬기로 한다.

해상도가 올라갔다고 해서
항상 선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나는 지금
SD에서 HD로 올라가는 중인 것 같다